|
최근 동북아경제권 기반 조성과 발전의 방안으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을 초빙해 유라시아 대륙의 주요 관문이 될 한일 해저터널의 가능성과 타당성, 비용, 건설에 따른 경제·사회적 효과 등에 대해 알아본다.
―인근 국가들로부터 한일 해저터널 건설 제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허재완 교수=일본은 학자, 정치인, 기업인 등이 속한 ‘일한 해저터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저터널을 공동연구하자고 제의해오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필요성을 언급하는 정도이지만 공식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하자는 제안은 없었다. 다만 함께 연구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토목학회에서 한국 학자들과 건설업계에 해저터널을 적극 검토할 것을 제의한 바가 있다.
▲전일수 원장=1991년부터 미국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 등의 민간 전문가 모임인 동북아경제포럼에서 동북아 운송시장의 자유화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제기된 한일 해저터널은 과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과 관련해 구상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전경련이 동북아 물류통신 로드맵에 포함시킬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많은 공사비와 경제성, 국민감정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 사업이 추진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허=3가지 정도를 들고 싶다. 첫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해저터널을 놓고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이점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새로운 기회로 보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일본도 규슈 지역에서는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의지가 강하지만, 도쿄를 중심으로 한 혼슈 지역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이 대륙과 연결되는 문제와 관련해 일본인들은 2차대전이나 임진왜란 등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에 섬나라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한일 해저터널은 한반도의 교통 네트워크와 중국·유럽의 교통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과정과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한일 양국의 왕래수단이 된다면 많은 비용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사전에 남·북한과 중국의 교통 네트워크가 확충돼야 한다.
셋째, 양국 정치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유로터널 건설도 영국과 프랑스의 정상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 이뤄졌다.
▲전=동의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투자가치와 재원조달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 건설의 타당성은 있다고 보는가.
▲전=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 타당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재무적 타당성과 경제적 타당성이다. 교통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측면의 타당성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제·사회적 효과까지 반영하여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허=다른 하나를 추가한다면 바로 정치적 타당성이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는 이전까지 교류가 없던 영호남 지역을 연결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한일 해저터널이 설사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더라도 정치적 타당성에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간 뿌리 깊은 반목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양국의 미래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전=사실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을 넘어서 사회적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영불 해저터널의 경우 나폴레옹 시대에 제안된 것이 200년이 지나 그 꿈이 이뤄졌다.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는가. 공사기간은 얼마나 될 것으로 보는가.
▲전=기술적인 부문에는 문제가 없다는 데 양국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기간은 대개 15년으로 알려져 있고, 어느 일본 교수는 10년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허=공사 도중 예상치 못한 지층을 만나게 되면 굴착 속도가 느려진다. 대한해협의 지층조사는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공사기간을 말하기 어렵지만 15년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일 해저터널이 가지게 되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허=한일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일본이 동북아 대륙으로 편입하게 된다. 경제적 공동체뿐만 아니라 지리적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일본의 점령을 받은 동북아 국가 중에서 가장 가혹한 시련을 겪었던 한국이 해저터널을 통해 일본과 연결됨으로써 중국과 대만이 일본과 선린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동북아의 정치 안정과 지역경제권 형성에 중요한 일이다. 영불 터널은 유럽공동체를 상징하는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유로터널이라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의 해저터널이지만 이를 통해 유럽이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가 됐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영불 해저터널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터널이나 동북아터널로 불리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전=유럽의 모든 나라를 연결하는 유로피언 운송 네트워크는 각국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우리도 동북아 시장 통합의 기반이 되는 운송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대동아 공영권에서 제기됐던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일 해저터널이 개통됐을 때 우리나라와 주변국에 미치게 될 경제적 효과는 어떻다고 보는가.
▲전=운송 네트워크는 물류비를 절감시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양국의 인적 교류도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허=그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구로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트럭에 실려 해저터널을 거쳐 일본 백화점으로 곧장 가게 된다. 물류 과정이 대폭 줄어든다. 또 배나 비행기는 천재지변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해저터널은 날씨와 상관없다. 영불 해저터널은 물류비용 인하의 기폭제가 됐다. 마찬가지로 요금인하의 혜택은 고스란히 한일 양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 늘어나는 한일 간 인적·물적 교류에 해저터널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한국에 대한 투자가 상당히 많아질 것이다.
해저터널이 완공된 이후인 20여년 후를 생각해보자. 그때면 경제학자들이 예견하기에 중국의 경제력이 엄청나게 성장해 있을 시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거래 일부가 한일 해저터널을 통해 이뤄진다면 동북아 요충지의 이점을 자산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건설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신기술 개발과 함께 엄청난 고용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건설비가 최대 200조원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가 부담할 부분은 전체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 건설 비용 정도가 들어갈 것이다.
▲허=일본 측 공사 구간이 우리보다 훨씬 길다. 대마도와 부산 사이의 바다 노선의 절반 정도만 우리가 부담하고 일본이 나머지 공사비를 댈 용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한일 해저터널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사회적 변화가 있다면.
▲전=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였던 한국과 일본이 가까우면서도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허=독특한 동북아 문화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만일 한일 해저터널이 생기고 난 후 교류에서 자신감이 생기면 한중 해저터널 건설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이 실현될 경우 어떻게 해야 대규모 적자로 파산위기를 맞고 있는 유로터널 등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나.
▲전=SOC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해마다 7조원을 도로 부분에 투자하고 있는데, 해저터널을 민간인에게만 부담시킨다면 무리가 있다.
▲허=유로터널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터널의 수입은 유지관리 비용보다 많다. 다만 민간업자들이 100% 참여하다 보니 선박과 비행기 업체들이 요금을 경쟁적으로 낮추면서 원금 회수가 어렵고,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의 경우 사업자에게 부대 수익사업을 적절히 부과해주고 정부가 부분적으로 참여하면서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이 조달된다면 재정 문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의 성공을 위해 더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허=관심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여론을 선도하는 그룹이 필요하다. 터널 유형과 관리 방법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있어야 하고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다.
▲전=한일 해저터널 사업은 동북아 지역 전체의 안정을 추구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 문제에 대한 각국의 공동 노력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안경업 여론독자부장,
정리=김보은 기자, 사진=김창규 기자
출처 : 세계일보 2005-07-22
|
